서울 잠실의 어린이집 보육 교사로 일하는 이모(32)씨는 29일 오전 8시 출근을 마쳤다. 맞춤형 보육이 시행되면서 종일반을 신청한 부모들은 오전 7시30분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지만 아직 그 시간에 어린이집을 찾는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이씨는 "종일반을 신청한 부모들도 오전 9시께 아이를 맡긴 후 오후 4시가 되면 데리고 간다"며 "자기 아이 혼자 남을까 봐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맞춤형 보육이 시작되기 전부터 원장님의 '강요'로 대부분 어머니가 가짜 취업증명서를 내고 종일반을 신청했다"며 "부득이하게 맞춤반에 소속된 아이들도 바우처를 사용해 종일반과 하원 시간이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맞춤형 보육이 시작된 지 한 달을 맞았지만 부모도 어린이집도 모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맞춤형보육제도란 전업주부의 0~2세 영아의 어린이집 보육시간을 6시간(맞춤반 오전 9시~오후 3시)으로 제한하는 정책이다. 12시간 종일반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맞벌이 가정을 비롯해 구직 중이거나 임신 중, 다자녀(3명 이상), 조손·한부모, 가족 중 질병·장애가 있는 경우 저소득층으로 한정된다. 정부는 맞춤반 보육료를 종일반의 80%로 책정했다. 맞벌이 부모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어린이집을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정책이지만 그 이면에는 '편법 운영'이 속출하고 있다.종일반을 신청한 부모들은 어린이집 눈치로 오후 4시면 아이를 찾아가는 게 '원칙'처럼 적용되고 있고 전업주부들은 어린이집의 강요에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종일반을 등록하거나 '원치 않는' 바우처를 쓰고 있다.인천에 사는 워킹맘 김모(32)씨는 "오전 7시30분부터 12시간 아이를 맡길 수 있다고 해서 종일반을 신청했지만 달라진 게 한 개도 없다"며 "하원 도우미까지 쓰면서 아이를 오후 4시 언저리로 데리러 간다"고 말했다.김씨는 "아이를 길게 맡기려고 해도 우리 아이 혼자 어린이집에 남을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며 "아이가 '왕따'처럼 혼자 (어린이집)에서 만화를 시청하게 하는 것보다는 돈을 더 들여서 도우미를 쓰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용인에 사는 이모(34)씨는 "아내가 다음 달 복직을 해 오전 8시께 아이를 맡기겠다고 했더니 어린이집에서 '아직 아이를 일찍 맡기는 부모가 없다'며 은근히 눈치를 줬다"면서 "정책대로 아이는 맡길 수는 있게 됐지만 혹시나 우리 딸이 구박을 받을까 봐 벌써 걱정"이라고 토로했다.맞춤반 자녀를 둔 부모들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전업주모 이모(33)씨는 "어린이집이 구직등록을 하고 동사무소에서 종일반을 신청하라고 은근히 강요한다"며 "맞춤반 아이에게는 간식을 제공할 수 없으니 종일반을 신청해야 한다는 식"이라고 불쾌해했다. 전업주부 한모(31)씨는 "정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맞춤반 운영 시간을 어린이집과 논의해 1시간 앞당기거나 미룰 수 있다고 했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맡기겠다고 했더니 '바우처를 사용하라'는 말만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맞춤반 운영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지정했다. 다만 어린이집과 협의 후 등·하원 시간을 1시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바우처'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부담이 없지만 어린이집은 최대 6만원을 더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일부 어린이집에서는 맞춤반 아이들에게는 바우처 사용을 거짓으로 기록하거나 식재료를 저렴하게 바꿔 어린이집 운영 비용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어린이집 교사는 "맞춤반 아이가 들어오면서 (종일반보다) 지원금이 적다 보니 식비에서 돈을 줄이고 있다"면서 "식단에 적힌 음식을 내놓기 위해 싼 식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아이들의 견학비를 부풀려 돈을 챙길 때도 있다"며 "맞춤반 아이의 경우 바우처 사용을 강요하거나 몰래 시간을 부풀리기도 한다"고 했다. 맞춤형 보육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됐지만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졸속 정책'이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부모 등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서대문구의 한 어린이집 이모(45) 원장은 "맞춤반 시행 첫날, 낮잠 시간인 오후 2시30분에 아이 혼자 하원할 준비를 하고 있더라"며 "맞춤형 아이가 하원하는 시간도 다 달라서 간식을 못 먹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이 원장은 "(맞춤반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해도 손이 없다. 교사가 한 명만 더 있어도 맞춤반 아이들의 간식을 챙길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맞춤반 아이만 따로 시간을 정해서) 간식을 먹이는 게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결국 아이들의 피해, 보육교사의 이중부담, 엄마들의 불편함까지 초래했다"며 "준비가 된 후 정책을 발표해야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보육교사 신모(29)씨는 "자녀 어머니가 아이를 일찍 맡기면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일찍 나와야 하는데 여기에 상응하는 수당은 없다"며 "보육교사 10년 차 평균 월급이 300만원 내외다. 추가근무 수당은 없고 근무시간은 더 길어지고 어떻게 일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그는 "구청에서는 단속 차 오후 6시에 전화로 (어린이집이 종일반 운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더라"면서 "공무원은 오후 6시 퇴근 시간을 지키면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은 너무 뒷전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울 은평구 소재 어린이집 박모(41) 원장은 "내년에 맞춤형 보육을 시행한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맞춤·종일 가르는) 정확한 기준도 모르는 채 주먹구구식으로 시행한 점이 아쉽다"며 "어린이집조차 맞춤형 정책과 관련된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맞춤형 교육의 대상자도 알 권리가 있다"며 "운영 방침을 설명하는 오리엔테이션(OT)을 실행하고 학부모들에게도 설명해준 후 시행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