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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추억의 굴뚝새를 그리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7.04 10:15 수정 2017.07.04 10:15

어느 누구든 아마 옛것에 대한 그리움은 있게 마련이다. 돌아가신 할머니 어머님도 세삼 생각나고 옛 살던 집의 풍경도 산야도 정겹던 이웃도 간혹 생각난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렵거나 살아갈 일이 막막할 때면 문득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초가지붕이 있고, 돌담을 둘러친 오래전 고향마을에는 참새가 무리지어 날아들곤 했고, 뒷담에 붙어있는 소나무 덤이 위를 소살되며 굴뚝새 대여섯 마리가 종일 오가곤 했을 것이다. 참새 때 무리는 세월을 감아 날 수 있어서인지 아직도 시골길을 걸으면 심심찮게 마주치곤 한다. 그러나 들판을 누비던 종달새나 굴뚝새는 어디로 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골마다 초가를 시멘트 기와로 바꾸고, 나무를 때던 부엌을 기름보일러로 바꾸어버려 이제 웬만한 시골에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다. 해가 질 무렵이나, 이른 아침 고요를 타고 오르던 길다란 곡선의 연기가 불현듯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추억은 아닐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포럼이나 세미나, 심포지엄에 간다고 하여 괜히 바쁠 때가 있다, 원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책이름이 심포지엄으로 향연이란 뜻이다, symposion의 sym은 함께 먹고 posion은 함께 마신다는 뜻이다. 옛말에는 우리가 매일 먹던 밥상에도 여러 종류의 밥상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두레상은 말하자면 우리 조상들이 이름붙인 오늘날의 심포지엄이였을 것이다. 온 가족이 큰상에 둘러 앉아 받는 상이 두레상이다. 어떻게 끼여 앉든 온 식구가 단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되는 상이 두레상이다. 두레상에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들 그리고 어떤 때는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사람까지도 모두 평등하게 둘러앉는다. 어떤 때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어떻게 다 둘러앉을 수 있을까 걱정해도, 어깨를 좁히고 다리를 오므리다보면 어느새 다들 한자리씩 잡아 둘러앉기 마련이다. 드러나게 반찬 싸움하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니 은밀한 신경전을 벌이거나, 급기야는 다음을 위한 양보와 단념도 배우게 된다. 밥상에서 밥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밥상에서는 옆에 앉은 사람들의 사랑과 배려, 교류와 교육, 심지어는 검소한 밥상 위의 절도와 예의, 다이어트와 건강도 함께 챙겼다. 단아하고 검소하며, 절도 있으면서도 시끌벅적한 우리의 밥상이 요즈음에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도대체 왜 일까. 우리 아이들이 누구와 무엇을 먹는지, 얼마나 먹는지 알 수 없는 세태가 되었다. 누구를 만나 어떤 말을 하며 먹는지 모르니, 어떤 생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옛 때의 밥상에는 밥만 먹는 것이 아니고 가족의 대사 등 세상사는 정보와 뉴스 등도 교류했다. 그리고 겸상은 하나의 상에 단 둘만이 마주 앉는 밥상을 말한다. 겸상은 주로 사각밥상에 차린다. 평소에 겸상은 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랑방에서 드셨다. 우리는 우연히 마당에 서서 두 분이 식사하는 모습을 올려다보면 웃음 을 금치 못할 때도 가끔 있었다. 백발의 머리 둘이 멀어졌다 기까와 졌다 하는 모습이 어린 우리들의 눈에도 정말 다정하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할머니가 반찬도 집어드리고, 고등어 가시도 발라주셨을 것이다. 겸상은 가끔 할아버지와 친척 할아버지가 받기도 하셨다. 두 분이 겸상으로 아침을 드시면, 그날은 틀림없이 중요한 용무가 있게 마련이였다. 잘 차려 입은 친척할아버지는 식후에는 으레 멀리 출타하시곤 했다. 아마도 겸상은 무엇인가 단 둘이서만 긴히 할 일이 있을 때만 하는 밥상이였을 것이다. 비밀스런 회동도 둘만의 조찬으로 천연스레 넘기는 삶의 방식인 단 둘만의 심포지엄이였다. 그 옛날 밥상의 추억들이다. 군불을 피우던 고래를 따라 무엇이 그리 반갑던지 빼꼼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반겨주던 굴뚝새가 가슴속에 작은 날개를 펼치며 다가온다. 환경의 변화는 추억의 그림자마저 지우게 하는 것일까. 굴뚝이 없으니 굴뚝샌들 어디에다 정을 붙이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제는 자취를 감춘 굴뚝새, 날개 길이가 5cm정도에 불과한 작은 다갈색의 굴뚝새가 이토록 그리운 것은 철새처럼 이리저리 자기만의 이익만을 찾아 쫓아다니며 변신을 예사로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작지만 제 이름 값을 하던 큰 본보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뒤 곁간을 오가며 곡식 한 톨 건드리지 않고, 짚이나 썩은 나무 배까리를 뒤지며 작은 벌레나 잡아먹고 살아온 이로운 추억의 새,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집착하며 살아온 우리들의 잘못이 얼마나 큰 것 이였나 뉘우치게 하는 새이다. 뒤 곁간 감나무아래 서 있으면 인기척에 놀라 쏜살같이 숨어버리는 굴뚝새의 수줍은 모습이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그리움이 주는 옛것에 대한 안타까운 추억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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