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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저 고독한 몸짓은 그리움의 시작일 것이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6.20 11:13 수정 2017.06.20 11:13

한해가 저무는 늦가을이 오면 경주시에 있는 무장산에 한번 가보라 권하고 싶다.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절정을 이루는 경주시운곡면 국립공원 무장산 갈대숲은 그동안의 오색 치마 단풍 은 원색의 향기에 취해 또 다른 그윽한 풍경과 느낌을 가져다줄 것이다.‘갈색 추억’으로 불리는 갈대의 향연은 무리지어 가는 바람의 날갯짓과 철새들의 울음소리와 어우러져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물결치는 갈대는 한낮의 햇빛을 머금을 때 가장 화려하다. 햇빛이 지겹다 싶으면 서로 비비며 부등켜안고 흐느껴 운다.저 고독한 몸짓은 그리움의 표현일까? 옛 선조들은 갈대의 가치를 크게 활용했다. 갈대에서 대금의 떨림막을 채취할 수 있었고, 갈대꽃으로는 빗자루로 만들기도 했다.또 중간 줄기는 김발, 뿌리 근처의 굵은 줄기는 땔감이 됐다. 갈대꽃은 아침나절엔 은빛을 띠지만 해가 절정에 이를 때가 되면 잿빛 색깔을 낸다 해가 질 무렵에는 황갈색을 연출하여 햇빛을 받은 부분의 무장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반짝임도 유난히 화려하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고단한 몸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 우연히 올려다 본 겨울하늘에는 달빛이 온 세상에 하얗게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 하게 된다. 달은 늘 그곳에 있었으나, 일상에 찌든 우리는 마치 큰 발견이나 한 듯 경외감에 사로잡혀 발길을 차마 떼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의 저자는 우리가 바쁜 현대생활에 쫓겨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며 산다고 일러준다.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인지, 그리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치명적인 사실을 잊고 지낸다는 것이다.“들판의 백합화를 한번 유심히보라. 아기 귀에 난 솜털을 느켜보라. 뒷마당에 앉아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어보라. 인생은 곧 막이 내릴 무대로 착각하여보라 그러면 당신은 기쁨과 열정을 품고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 애너 퀸들런(AnnaQuindlen)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마흔살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열아홉 살 때까지만 해도 철없는 여대생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학교생활을 중단, 집에서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통증이 심한 어머니에게 모르핀 주사를 놓아주는 1년 사이 생의 비밀을 깨닫는다. “그것은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시각과 다양한 색으로 보는 시각 사이에 그어진 선”을 넘어서는 것이다.아름다운 사진들이 곁들여진 이 소책자에는 저자의 주옥같은 사색의 흔적이 배어난다. 그는 “삶과 일, 두 가지를 혼돈하지 말라”고 말한다. 일은 삶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승진이나 고액연봉 넓은 집에 목매어 살지 말고 진짜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어느 오후 심장발작을 일으키거나, 샤워를 하다가 문득 가슴에 혹이 잡힌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저자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주장한다.그래야 며칠, 몇 시간, 몇 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며, 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이나 우리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교향곡의 멜로디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는 것이다.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을 사랑할 것이며, 인생을 산다는 것은 리허설이 아니며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오늘 뿐이라는 사실이다.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런 평범한 진실을 잊고 살게 마련이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여백을 만들고, 그걸 사랑하고, 사는 법, 진짜로 사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사랑은 한가한 도락이 아니라 언제나 중요한 일임을 염두에 두라. 나는 매일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는 학생입니다.이메일을 보내세요. 편지를 쓰세요. 어머니를 꼭 껴안아 보세요. 아버지의 손을 꽉 잡아보세요.” 저자는 뉴욕타임스에 연재했던 칼럼 ‘공과 사(public and private)’로 92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현재 뉴스위크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겨울이면 찾아 와 우리들을 사색케 해주는 갈대의 향연,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산. 경주 국립공원의 무장산에 꼭 한번 가보라 권하고 싶다, 그곳에는 사랑이 있고 눈물이 있고 따뜻한 그리움이 있다.가파른 세상살이 보듬어 씻어주는 갈대의 긴 이야기가 있다.더군다나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통쾌한 서부영화 OK목장의 추억도 바람소리 따라 성큼 성큼 당신 곁으로 다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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