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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구한말의 데자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5.14 15:32 수정 2017.05.14 15:32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구한말 같습니다. 열강간의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판’이네요.” 험악해지는 중국의 한국기업 압박에 대해 유통업체 한 임원이 건넨 말이다. 사드 배치의 불똥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중국에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롯데마트 점포가 60여곳으로 늘었고, 반한시위를 우려해 임시휴업에 들어간 곳도 10여곳에 이른다. 중국 소비자들은 대대적인 한국제품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은 지난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롯데 사탕 사진을 올렸다가 중국 팬들의 비난에 곤욕을 치렀다. 서울 명동과 제주, 면세점을 가득 매웠던 중국 단체관광객들은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금지령에 자취를 감췄다. 심지어 중국이 우리나라를 적성국으로 지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럴싸하게 포장돼 퍼지고 있다. 유통업체들로선 오랜기간 공들여 쌓아온 중국과의 ‘꽌시(關係)’가 사드 때문에 졸지에 ‘우꽌(無關)’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기업 입장에선 사드와 같은 국가간 갈등이나 마찰 요소는 사실상 예측불가능한 천재지변 수준인 셈이다. 정부에 대한 유통업계들의 불만도 거셀 수 밖에 없다. 콘트롤타워를 잃은 현 정부를 원망하는 기업인들의 목소리도 날로 커지고 있다. “무정부상태에서 기업하는 것 같다”는 비판마저 들려온다. 과연 정부만의 탓일까. 정부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불똥이 튀었다지만, 뒷돈과 ‘꽌시’에 의존해 중국 사업을 해온 관행이 없었다면 국내 기업의 피해가 이처럼 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중국은 서류 미비, 사소한 규정 위반 등을 문제 삼아 WTO에 불공정무역행위로 제소당하지 않는 범위에서 교묘하게 한국 기업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억울하겠지만 지금의 피해는 중국을 접하는 기업인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위기다. 오랜기간 쌓아올린 한류(韓流)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미국·중국이 세를 겨루는 틈바구니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숙명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부도, 기업도 제대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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