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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가요 ‘성은 김이요, 이름은 D.S.’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5.14 15:24 수정 2017.05.14 15:24

비밀은 더 이상 없다. 해답이 내 바로 옆에 있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D.S.’는 여가수 M의 히트곡이다.처음 이노래(1991년?)를 들었는 때는 무심하게 들었지만, 이 노래를 들을수록 구미가 동했다.가사중의 ‘김D.S.’에 해당하는 제자를 떠올려보았다. 김두식이 2명이요,(문경중24회졸업생1명, 문경중 25회 졸업생 1명), 김동수(문경중 25졸업생)가 혹시 아닐까? 추리가 아닌 망상일지 몰라도, 김두식씨와 김동수씨를 떠올려본 것은 속일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예술을 하는 사람은 남·녀 없이 다정다감하고 끼가 드센 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문경중학교 역사교사로 1971년 3월 1일부터, 1976년 2월 29일까지 만5년을 근속했다.문경중 24회 김두식은, 1972년에 내가 학급담임교사와 역사교과를 가르쳤고, 25회 김두식은 1973년에 역사교과만 지도했다. 24회 졸업생 김두식씨는 문경중 졸업생으론 유일하게 현역 대사(남미콜롬비아)로 중임을 수행하고 있는 미더운 외교관이다.콜롬비아는 국토면적이 114만 평방킬로미터로 대한민국 국토의 11.4배 되는 대국(大國)이다.학창시절에 책장에 눈길을 고착시켰던 김두식 대사는 유명 여가수 M의 노랫말에 등장할 정도로 한가한 화상은 단연코 아니다. 문경중 25회 김주식학생은 중학교 2학년때 학급실장을 맡은 유망주였다.내가 전직 문경중교사로 가장 놀랐던 것은 25회 김두식을 한참 지난 후 거리에서 만났을 때였다.중학교 졸업하고 20여년만에 만났으니, 고시를 합격한 고급공무원이나 일류기업체의 중요과장은 됐으리라 기대를 했는데, 마대(麻袋)를 걸머지고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사람의 앞길은 참으로 예측불허다. 왕년의 유망주가, 현실 속엔 극빈자로 전락하여 젊은 나이에 공공근로를 해야 하다니! 지난날의 교사로서 낭패감이 들고, 가슴이 서늘했다.어쨌든 제자 김두식은 인간성이 순수하고 착한 삶은 살고 있다. 사고방식이 좀 머시기 하긴 하나, 마음이 보드라운 훈남임은 의심여지가 없다. 오늘(2017년 4월 29일)은 참 잊지 못할 중요한 날이다.문경시 점촌동 영강노인회관 뜰에 있는 영강정(정자이름) 마루에 우연히 김두식(문경중 25회)과 나란히 앉아, 김두식의 지난날 청춘고백에 내 귀를 기울였다.김두식은 30대초반에 여가수 M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한다. 심신이 병행하여 농도짙은 순정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일방적으로 행복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김두식과 젊은 여가수 M은 서로 떨어져선 허전해서 못 살 것 같았지만, 김두식은 여가수 M을 사랑하는 것에, 부담감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 수 밖에 없었다. 김두식은 경제적 약자로 사랑하는 여가수 M과 결혼을 하도 행복할 수 없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수중무일푼으로 서울 시내에 보금자리를 마련 할 수 없었고, 경북 점촌으로 내려와 살면, 여가수 M이 가수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큰 장애요인 이었다. 번뇌 끝에 김두식은 여가수 M은 충격이 대단히 컸던 모양이다. 급기야 김두식을 이별한 아픔을, ‘성은 김이요, 이름은 D.S.’ 라는 가사를 짓고, 노래를 애타게 불렀다.지금도 김두식은 미혼으로 여가수 M의 인터넷에 하루도 눈길을 떼지 않는다. 여가수 M의 내 모든 것을 사랑하고 간 사람이란, 김D.S.가 나의 지난날 제자 김두식일 줄이야…. 세상에 비밀은 없다. 해답이 이리도 내 바로 옆에 있을 줄 미처 몰랐다.제자 김두식씨와 여가수 M씨여!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아름답습니다. 서로의 행복과 발전을 빌면서, 지난날의 인연을 아쉬워 말고, 더욱 밝게 열심히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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