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시대에는 권력에 기대어 출세하려는 부류의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자리에 앉히면 소위사단이 된다. 이것은 망국의 징조다. 물론 국가정책공약에 뜻을 같이하여 나라 세움에 기여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정치브로커들이 한 자리 하겠다고 줄을 서는 모습은 보기가 민망하다. 즉 선거 때 내가 어떤 일을 해서 기여했노라고 하면서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 선거에 최선을 다해 도왔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꼭 보상을 바란다. 국가지도자라고 자칭 선구자라는 사람들 또한 어떤가? 나라분쟁 조정의 해결사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國民)갈등 조장을 자처하고 나서 문제해결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패권과 패거리집단에 둘러 또 다른 국가미래 갈등문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소위 국가지도자가 되려면 포용을 유지하고 미래비전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국가지도자라고 자칭 선구자들은 지역간 세대간 갈등조장에 정작 본인들이 길거리 패거리 아스팔트 집회 행위자체의 부끄러움도 모르고 참여에 떳떳함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정치는 매래경제나 미래사회 미래문화에 비해 한참을 뒤지고 있음을 위정자들은 알아야 한다.‘권력은 국민(國民)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은 지금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민생경제위기보다 국가지도자라고 자칭 선구자들의 신뢰의 위기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사회갈등분위기가 더욱 큰 위기다.국민(國民)들은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미디어를 통해 보아야 하는 국민(國民)의 답답한 마음을 기억하고 있는가? 어쩌면 차라리 그 시절이 더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이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정치풍토는 이제 끝나야 하고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전직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고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뒤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환으로 저 세상으로 떠났다. 이 두 대통령의 평가는 그동안 한 시대를 살아 온 우리 모두가 평가할 일이나 이미 고인이 된 두 대통령을 두고 왈가왈부 하기는 적절치 않다. 역사는 항상 권력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사람을 숨기지 않고 진실과 정의 앞에 반드시 밝히고 만다. 아둔한 인간들이 스스로 영웅으로 착각을 하고 그 나락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얘기들이 처연하게 들려준다. 이것이 시간의 흔적인 역사이자 어쩌면 ‘시간의 보복’이라 할 수 있다.그래서 역사의 교훈은 체득(體得)과 통찰력을 남기려고 애쓴다. 어쩌면 권력이란 인간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날카로운 비수가 분명하지만 안타까운 수많은 민초(民草)들을 짓밟고 고통의 질곡으로 내몬 피의 대가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웅은 없었다.’고 필자는 기록하고 싶다. 질곡(桎梏)이란 죄수를 가두어 둘 때 쓰던 형구(刑具)인 두 개의 기다란 나무토막을 맞대어 그 사이에 구멍을 파서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를 채우는 차꼬와 수갑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민초(民草)를 질곡으로 몰아 간 가해자는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이고 피해자는 국민(國民)인 것이다. 국민(國民)은 권력자의 올곧고 정도(政道)의 카리스마를 원하고 있다. 해방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청와대는 질곡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청와대를 거쳐 간 대통령 중 한 분도 올곧은 카리스마를 지닌 대통령이 있었던가? 원래 권력이란 국민(國民)이 잠시 동안 위정자에게 위탁한 것뿐이다. 때문에 권력자는 자연적으로 국민(國民)의 생명과 안전을 보전하기 위해 그 권력을 국민(國民)과 함께 써야하고 자신을 위해 수많은 국민(國民)을 곤혹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은 항상 마지막에는 부정부패의 함정에 늘 가까이 있다. 권력은 ‘그들만의 잔치’라는 오만의 배타적 이기주의로 타락한 돈과 명예가 최고의 가치로 저속한 야합에 물드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역사를 통해보면 위대한 지도자 밑에는 위대한 국민(國民)이 있다. 대한민국(大韓民國) 권력자의 행(行)은 예의염치(禮義廉恥)가 으뜸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