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지금껏 주인을 알 수 없었던, 정체불명의 ‘서명/사인sign'이었다.
이 의문의 ‘사인’은 이육사가 소장한 책으로 알려진 일본어 책, '예지와 인생'(叡智と人生)(포르튀나 스트로프스키Fortunat Strowski(1866-1952) 지음, 오사와 히로미大澤寬三 역, 동경, 第一書房, 1940년)속 표지에 남겨진 것이다.
이 책 속표지에는 의문의 ‘사인’과 함께 ‘육사’(陸史)라는 전서체(篆書體)의 한자로 된 이육사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이 책의 주인이 이육사인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 ‘사인’의 주인을 이육사라고 지금까지 확정할 수 없었던 것은, 흡사 영문자처럼 보이는 ‘사인’을 연구자들조차 해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이 의문은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곳에서 풀렸다. 한국국학진흥원(경북 안동 소재)의 ‘선비아카데미’강연장에서 마침내 이 비밀이 풀렸기 때문이다.
‘사인’을 해독한 사람은 당시 강연을 듣고 있던 법무사 사무소 직원 ‘정성훈’ 씨였다. 연사인 손병희 이육사 문학관장이 이 ‘사인’을 해독할 수 없어 서명의 주체를 알 수 없다고 하자, 그가 ‘사인’을 거듭 살펴 그동안 궁금증을 자아내기만 했던 ‘사인’의 비밀을 푼 것이다.
‘사인’의 비밀은 이육사가 자신의 다른 이름인 ‘이활’(李活)을, 뒤집어 보아야 알 수 있도록 썼다(‘미러 라이팅’mirror writing)는 데 있다. ‘사인’을 반전시키면, ‘이활’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쓴 것이다.
이육사 순국 후 78년, 이육사 출생 후 118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마침내 ‘사인’의 주인이 ‘이육사’임이 분명하게 밝혀진 것이다.
이와 함께 공개된 자료는 이육사 시인의 아우이자 언론계에 종사했던 이원창(李源昌)의 엽서 4점이다. 이원창은 ‘남선경제일보 인천지국’, ‘조선일보 인천지국’, ‘매일신보 인천지국’ 등에서 활동했으며, 1944년 1월 형 이육사 시인의 유해를 북경에서 인수해 귀국한 인물이다.
이 엽서는 이육사 형제들의 친인척 관계와 일상생활의 모습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육사문학관은 이육사의 개인사를 좀 더 심층적으로 밝히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육사와 관련 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발굴 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육사문학관은 문화체육관광부, 경북도, 안동시의 지원을 받아, 올해부터 앞으로 3년 간 ‘이육사 기록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다. 관련 학자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추진될, ‘이육사 기록 프로젝트’는 이육사사전, 이육사전집, 단행본 이육사 시리즈 발간을 포함한 이육사아카이브 구축, 그리고 이육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 중심이다.
이 사업을 통해, 이육사에 관한 모든 정보와 자료를 집대성해 이를 디지털화하고, 동아시아(유라시아) 지성사와 문학사의 지평 속에서 이육사를 새롭게 조망함으로써, 일국사적인 관점과 동어반복적인 이육사 이해를 넘어선 이육사의 세계사적 의의를 제대로 평가하고 확립하려고 한다. 조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