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추억 학교시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있고 한편으론 인생의 좌표로 설정된다고 본다. 그 선생님이 들려주던 제3정치스토리가 지금까지도 청년시절 스폰지 상태로 모든 것을 받아들었던 때가 추억의 기억에 남아 있다.그 선생님은 종종 “우리사회의 정(正)은 공정한 자만이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곤 했다. “정(政)이 잘못되면 좌(左)가 내세우는 급진적 세력이 정(正)을 앞세워 색(色)의 정치로 만들어 민(民)의 마음을 흔든다.”는 것에 대해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였지만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현사회의 현실정치를 바라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되며 생각이 난다. 특히 작금의 정(政)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필자의 생각은 이끄는 주체의 가치관과 시각에 따른 철학과 노선이 해프닝 같은 연예적인 무대배우가 드라마적 정(政)이 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코메디 해프닝 쇼가 정치의 일부분’으로 희석되는 행(行)이 서글픈 생각이 든다.뭔가는 바뀌어야 한다고 입장에서 또 한 사회의 정(政)이 그것을 이끄는 정(政)이 잘 되면 인(人)이 바로서고 국가가 바로 서려면 정(政)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대선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암암리벌이는 선거전이 정(政)보다는 끝장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렇다 서글프다.특히 거짓뉴스에 ‘누구나 탄핵’ ‘아무개 OUT’ ‘반탄핵 친탄핵’ 같은 구호가 지금부터 나오는 것을 보니 정확히 말하면 패거리 같은 ‘색(色)의 정치’라는 생각이 너무도 강하게 드는 것을 필자는 느끼고 있다.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첫 대선선거에서 보이는 국민(國民)들의 폭발관심이 그들의 정(政)에 이미 진저리가 나서인지는 아니면 또 무언가 신기류 막장의 혼란기대에서 오는 희열이 아닌지 하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금시대 이젠 애초부터 정치색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후보들과 그들 뒤에서 자신들의 입장과 비슷한 후보를 편 들어주는 정치집단들과 색(色)의 단합에 앞장선 시민단체이면서 아닌 것 같은 시민단체의 모습은 이미 낯설지 않다.결코 새롭지 않은 이런 모습에 관심을 보여줄 국민(國民)들은 없다. ‘아스팔트 반탁 친탁’라며 야유를 보내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허나, ‘선거는 곧 정(政)’라는 말은 맞는 듯하다.정(政)에 좌와 우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정(政)을 논하는 데 좌와 우는 분명히 존재한다. ‘좌’가 내세우는 ‘평등’ ‘우’로 대변되는 ‘정쟁’으로 단정지어볼 수 있다고 본다. 오늘시대에서 정(政)은 진보혁신과 보수개혁 이라는 정치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이것은 오늘시대 정(政)이 가진 치명적 문제점이자 뛰어넘어야 할 장벽임이 분명하다. 허나 미래시대엔 그런 논쟁을 넘어서서 미래사회의 발전만을 내다볼 수 있는 정(政)을 수행해낼 후보가 있는지 국민(國民)들은 찾고 있다. 하지만 대선선거를 면밀히 살펴보면 국민(國民)들은 내(內) 투표를 하려고 한다.주체의 가치관이 철학과 노선을 좌우한다는 의미에서 ‘상(想)’을 따져야 한다면 그것 또한 엄격한 기준과 잣대로 평가해보겠다는 의미보다 새로운 신선한 안본 것을 선호하니 미디어퍼포먼스 거짓뉴스가 최고의 정(政)인 것 같이 보인다니 잘나나 못나나 미디어퍼포먼스 정(政)에 난리법석 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대선선거가 심판하기까지 하고 국민(國民)들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정(正)에 대한 정(政)을 평가하는 자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政)은 좋은 의미의 정치가 될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의 정치가 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시민대표들이 정(政)을 한다고 길거리 패거리 짓들만 하니 국민(國民)들은 나라걱정이 태산이다.어떤 이가 나올지....... 세상사(世上事)꼴이 정(政) 중심에 ‘상(想)’이 서있는 꼴도 우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