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부장판사가 19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법원 안팎에선 "재벌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받아준 '면죄부' 결정"이라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부터 어차피 영장이 발부되거나 기각될 확률은 반반인 만큼, 조 부장판사에게 의지만 있었다면 대승적 결단을 내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 기류였다. 하지만 조 부장판사는 이날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사실상 이 부회장 측 주장을 조 부장판사가 전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이 부회장 측은 현재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거액을 출연하는 등, 총 430억원 상당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사실 관계의 앞뒤가 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등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만나 '승마 유망주 지원'을 해달고 요청했고(2014년 9월15일)→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로 내정되고(2015년 1월)→실제로 승마협회 회장사가 됐으며(2015년3월)→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되고(2015년 7월17일)→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7월25일)가 이뤄진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측은 "합병 관련 청탁을 삼성이 했다면 2014년 9월 이전이나 2015년 7월17일 합병이 성사되기 전에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설파했고, 조 부장판사가 그 논리에 설득이 된 것이다. 특히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을 독대한 2015년 7월25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실에서 작성한 '말씀자료'에 삼성 합병 문제가 언급돼 있다 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실제로 그 얘기를 했는지 역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삼성 측 논리다. 법원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았으니 대통령이 그 얘기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라며, "그러면 결국 조 부장판사 입장에선 삼성 측 소명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인사는 "검찰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대통령의 지위를 '공갈범'이라고 했는데 특검에서는 이 부회장이 자발적으로 갖다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뇌물죄의 원래 구조가 아니다."라며 "뇌물이라는 것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잘 봐줄테니 돈을 가져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는 아쉬운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갖다 바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부장판사는 또 구속영장 발부 사유 중 하나인 범죄의 중대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430억원의 뇌물공여액 중 실제로 뇌물로 인정할만한 금액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법원의 다른 인사는 "특검이 뇌물공여액으로 본 430억원 중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삼성이 출연한 게 202억원이고, 그외 나머지 200억원 중 30억원 남짓만 실제로 지원됐고 나머지는 집행이 안된 돈인데 이것까지 특검은 뇌물로 봤다."면서, "재단 출연 관련 사실관계가 뇌물과 무관하다고 판단한 조 부장판사가 실제 집행되지 않은 금액까지 뇌물로 봤을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를 조 부장판사는 수사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면서, "원래 구속영장 청구는 기소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사를 하기 위해서인데, 이 부회장에 대해선 특검에서도 추가 소환할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 거의 완결됐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 이 부분도 조 부장판사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