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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5월에 생각하는 ‘자연의 리듬’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5.12 19:12 수정 2020.05.12 19:12

김 수 종
뉴스1 고문

지난 주말 인왕산에 올라갔다. 희누런 소나무 새순들이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아올랐고, 도성 담벼락 틈에서 자란 이름 모를 식물이 노란 꽃을 피웠다. 5월의 인왕산에서 자연의 건강한 리듬과 회복력을 보았다.
산꼭대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손에 쥔 채 맑은 공기를 놓칠세라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과 분위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올해 삼사월은 ‘잔인한 계절’이었거나 당시(唐詩)의 한 구절처럼 ‘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네)’의 절기였을 것이다.
한국은 방역 당국과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도시를 봉쇄하는 극단적 방역처방 없이도 코로나바이러스를 잘 막아내고 있다. 대구 신천지 교도들이 무더기 확진자로 드러날 때만 해도 얼마나 가슴 졸였던가. 시신을 처리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사람이 죽어가고 관 더미가 쌓여가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미국의 뉴욕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럽을 휩쓴 바이러스는 미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망자가 10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전망 겸 엄포를 내놓고 있을 정도다. 바이러스의 재상륙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바이러스엔 국경이 없다.
방역 정책이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됐다. 한국인들은 이제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문제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여름이 오니 마스크를 벗고 옛날처럼 경제활동과 레저를 즐기고 싶어 할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들이도 가고 싶고, 봄 동안 못 나갔던 해외여행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편안하고 익숙한 과거’로의 복귀가 과연 가능할까. 코로나19가 일으킨 경제적 충격이 해일처럼 밀려들 것이다. 미국에서 바이러스 전염이 확산되고 있어 세계 경제에 줄 영향의 깊이와 넓이를 예측하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세상’은 국제정치에서 초등학교 수업까지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자연을 다시 생각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즉 자연을 남용해 온 인간 행태에 대한 교훈적 메시지 말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가 바로 우한의 야생동물 시장이다. 인간이 바이러스를 불러낸 셈이다.
또 바이러스사태로 세계의 대도시가 봉쇄되면서 훼손됐던 자연이 복귀되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경제생활과 나라 경제를 걱정하면서도 던지는 말이 있다. “공기 하나는 깨끗해졌다” 서울 하늘이 정말 깨끗하다. 밤하늘에 보이지 않던 별이 반짝이는 저녁이 많아졌다.
인도 펀잡 지방 사람들은 200㎞ 떨어진 눈 쌓인 히말라야 연봉(連峰)을 30년 만에 볼 수 있다고 신기해한다. 영국 웨일스에선 사람이 다니지 않는 텅 빈 거리를 염소 떼들이 배회하고, 인간이 이 광경을 창문을 통해 바라본다고 한다.
그동안 인류가 공기를 얼마나 오염시켰는지, 야생의 생태계를 얼마나 심하게 몰아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구를 걱정하는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사태를 계기 삼아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고민하고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바이러스도 기후변화가 불러온 재앙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세계는 경제회복을 위해 달음질칠 것이다. 표가 급한 정치인들은 값이 폭락한 석유를 펑펑 쓰더라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전으로 경제를 빨리 회복시키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인류는 자연의 회복력을 시험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갈 것인가, 하루라도 빨리 경제성장 속도를 높일 것인가.
히말라야 산맥이 말해주듯이 자연은 인간의 힘에 반응한다. 화석연료를 덜 쓰니 아름다운 봉우리를 보여주었다. 환경훼손으로 자연재난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자연의 보복’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자연이 화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은 화낼 줄을 모르고 보복할 생각도 없다. 자연은 자신에게 가한 힘에 반응할 뿐이다. 이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런 게 아닌가.
그리스 소설가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번데기를 터뜨리고 나오는 나비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준다. 자연의 리듬에 맡기라고.
“어느 날 아침에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보았다. 나비는 번데기에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던 나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입김으로 열심히 데워 주었다. 그 덕분에 아주 빠른 속도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왔다. 그러나 날개가 뒤로 젖혀지며 구겨진 나비를 보는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가엾은 그 나비는 날개를 펴려고 안간힘을 썼고 나도 도우려고 입김을 불어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면서 날개를 펴는 일은 태양 아래에서 천천히 진행돼야 했던 것이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내 입김 때문에 때가 안 된 나비가 집을 나선 것이었다. 나비는 몸을 파르르 떨고 몇 초 뒤에 내 손바닥 위에서 죽었다.
가녀린 나비의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 오늘에서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달았다. 서두르지 말고, 안달 하지도 말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새해 아침을 생각했다. 그 불쌍한 나비가 내 앞에 나타나 날개를 파닥이며 내가 갈 길을 알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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