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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선시어외(先始於隗)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5.03 18:23 수정 2020.05.03 18:23

배 해 주
수필가

앞 先 시작할 始 어조사 於 높을 隗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글이다.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라는 뜻이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할 때 ‘나부터 시작하라’는 의미다.
전국시대 연나라는 제나라의 공격을 받아 영토의 절반을 빼앗긴 채 제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연나라 소왕(昭王)이 재상 곽외에게 인재를 구하는 방법을 묻자, 곽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한 임금이 천금을 주고 천리마를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잡일을 하는 말단 관리가 천리마를 구해 오겠다고 자청해서 그에게 천금을 주었습니다. 그 관리는 3개월이나 걸려 겨우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아내 급히 갔으나, 애석하게도 그가 오기 전에 말은 죽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관리가 죽은 말의 뼈를 오백 금을 주고 가지고 돌아오자, 임금은 매우 분노해서 말했습니다. “난 살아 있는 말을 원했다. 누가 죽은 말을 오백 금이나 주고 사 오라고 했느냐?” 그가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람들은 죽은 말도 오백 금을 주고 사는데 산 말은 얼마나 비싸게 사겠느냐고 생각할 겁니다. 아마 머지않아 반드시 천리마가 들어올 것입니다” 과연 일 년도 안 돼서 천리마가 세 마리나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금 임금께서 진정 인재를 구하시려 한다면, 먼저 저 곽외부터(先始於隗) 선생의 예로 대하십시오. 저 같은 자가 그런 대우를 받는다면, 저보다 훌륭한 자가 어찌 천릿길을 멀다 하겠습니까?”
소왕은 그의 말을 받아들여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세워 그를 스승으로 극진히 예우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명장 악의(樂毅), 음양가의 시조인 추연(鄒衍) 등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소왕은 이들 인재의 도움을 받아 제나라를 징벌했다.
어떤 일이든 가르침을 주고자 할 때 쓰이는 말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식자층이 솔선수범해서 행하라는 것이다. 너부터가 아니고 바로 나부터다.
이는 평소에도 물론 그래야 하겠지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더 깊이 요구된다.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블랙홀이 되어 세상을 삼키고 있다. 민심이 요동치고, 경제가 말이 아니다. 국민이 불안하다.
이럴 때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바로 나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는 이렇게 하면서 너는 저렇게 하라는 것은 불신만을 키운다.
아플 때 맞는 매는 더 아프다. 관리나 지도자가 힘들 때 생각 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에게는 비수가 된다.
전염병 관련 “대구 경북을 봉쇄한다”, “대구 경북의 지도자들은 일 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코로나의 기세가 잡히지도 않았는데 곧 종식될 것 같다”, “이제 경제를 살릴 때다”, “대구 손절” 등 말들이 많다.
지금 공무원이 힘들고, 현장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의 사투가 고맙다. 그리고 작은 마음의 담아 보내는 정성이 빛나는 때다.
모두가 일상을 버리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 때, 이럴 때 나부터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뒷전에서 일 맛을 잃게 하는 소수의 사람,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특히 나부터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하여야 할 때다. 어려울 때 서로를 이해하고 나부터 행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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