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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선즉제인(先則制人)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4.19 17:54 수정 2020.04.19 17:54

배 해 주
수필가

먼저 先 곧 則 억제할 制 사람 人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실린 글로서, 먼저 알아차리고 막아낸다. 즉 상대가 준비하기 전에 얼른 선수를 쳐서 제압한다는 뜻이다.
진(秦)나라 2세 황제 때의 일이다. 계속되는 폭정에 항거하기 위해 농민군 수백 명을 이끈 진승과 오광이 단숨에 함양을 향해 진격했다.
이에 강동의 회계군수 은통이 항량을 불러 의논했다. 항량은 초나라 명장이었던 항연의 아들로 조카인 항우와 함께 도망 온 뒤 타고난 통솔력을 발휘하여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은통이 말했다. “모든 강서 지방의 사람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는데, 이는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하려는 뜻이오. 옛말에, 먼저 손을 쓰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 늦으면 남에게 제압 당한고 했소. 나는 그대를 환초와 함께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 하오”
은통은 병법에 조예가 깊은 항량을 이용하여 출세의 실마리를 잡아 볼 속셈이었으나, 항량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군사를 일으키려면 우선 환초부터 찾아야 하는데,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제 조카인 항우뿐입니다. 지금 항우가 밖에 있으니 그에게 환초를 불러오라고 명하시지요” “그럽시다. 그럼 그를 들어오라 하시오” 항량은 밖으로 나가 항우에게 귀엣말로 일렀다.
“내가 눈짓을 하거든 지체 없이 은통의 목을 치도록 하라” 항우를 데리고 방에 들어온 항량은 항우가 은통에게 인사를 마치는 순간 눈짓을 했다. 항우가 은통에 앞서 상대를 미리 제압한 것이다.
그러나 항량은 곧바로 관아를 점거한 뒤 스스로 회계군수가 되어 군사 8천을 이끌고 함양으로 진격했으나 전사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회계군의 총수가 된 항우는 유방과 5년간에 걸쳐 패권을 다투다가 패하여 자결했다.
세상이 전쟁터 같다. 적군과의 전쟁이 아닌 바이러스와 전쟁이다. 중국의 후베이성의 성도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지구별을 신음하게 하고 있다.
2월 초까지만 해도 위정자와 정부, 집권당도 모두 적을 얕잡아 보았다. 필요하면 단칼에 적을 베어버릴 수 있다는 자만에 젖어 있었다. 호미로 막아도 될 일을 지금은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희생과 국민의 노력이 있어야 진정국면에 접어들지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결과다. 지금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기까지 여러 요인이 있다. 특정 종교인들의 비협조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었고, 청도의 한 병원도 화를 키우는데 일조한 결과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화를 키운 결과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할 때가 아니다. 모두가 나 아닌 우리를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일수록 지혜를 모으고 함께 헤쳐가는 저력이 있다. 개인이 지켜야 할 수칙과 공동으로 행해야 할 수칙도 있다. 모두 이 난국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행동을 같이해야 할 때다.
왜 먼저 알아차리고 막아내지 못했는가? 라는 아쉬움은 우선 뒤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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